어릴 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다. 계절마다 국내로, 해외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가지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덕분에 추억할 여행지는 많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있는 제주도 자전거 종주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인천에서 20시간 넘게 배를 타고 제주도로 이동했다. 부서지는 파도를 보는 재미가 사라지기도 전에 배 안에서 보물찾기, 폭죽놀이 같은 이벤트를 했다. 계단 옆에 있던 보물찾기 종이를 찾아 매점 팔던 오징어포를 상품으로 받았던 짜릿한 희열은 여전히 남아있다. 당시 20명 가까이 되는 모르는 사람들과 한 객실에서 단체로 자는 것은 공포로 남게 됐다. 모르는 사람이 자는 사이에 해칠 수도 있다는 N의 상상력이 이어져 이후 거실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자는 것을 피하게 됐다.
12살의 나이로, 자전거로 제주도 한 바퀴를 돌았다. 지금 찾아보니 빠르면 2박3일이면 제주도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당시엔 7박8일 동안 내륙과 해안선을 번갈아 가며 하루에도 몇십 킬로를 달렸다. 차도를 달리던 중간에 자전거 바퀴가 펑크났던 것, 예약 없이 빈방이 남아있는 펜션을 찾아다녔던 것, 당시엔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던 고등어회를 찾아 헤매었던 것까지 그때의 추억이 여행 취향이 확고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
그중 제일은 여행 마지막 날에 해수 사우나를 갔던 추억이다. 사우나에서 만난 모르는 언니(당시 13살이라고 소개했다.)와 친구가 돼서 각종 이벤트탕과 찜질방을 섭렵했다. 스스럼없이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초등학생은 커서 누구에게나 말을 걸 수 있는 넉살 좋은 사람이 됐다. 사우나에서 운영하는 야외 바비큐장에서 먹은 뽀드득 소시지의 육즙을 좋아했듯 캠핑장에서 먹는 스모크 소시지를 좋아하게 됐다.
이제는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툴툴거리던 두 아이의 투정을 감내한 부모님의 여행 스타일을 본받고 싶다. 다 같이 즐겁다고 떠난 여행에서 한 명이 투정을 부린다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 짜증을 넘어 타인의 행복도 내 행복처럼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힘들고 지쳐도 이겨낼 강인한 체력은 덤으로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