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도 온도차가 있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강박적인 성향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도 퍽 버겁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허물없이 지내는 이들이 늘 부러웠다. 낯을 유난히 가리던 아이는 커서 꽤 멋진 가면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예민한 만큼, 다른 사람이 신경 쓸만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늘 조심했지만, 누군가에겐 사려 깊은 사람으로, 또 누군가에겐 부담스러운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어떤 날은 상대방의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읽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매 순간 눈치를 보다 보면, 기운이 쏙 빠지고 한동안 넉다운이 되는 것이다.
인생사 혼자 사는 거다, 결국 가족이 중요하다, 인생에 친구는 몇 명이면 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오가며 스치는 작은 인사에도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기 망정.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따스한 미소를 지닌 동기 A 양은 매번 새로운 무리와 방방곡곡 여행을 다닌다. 다가가기 어려운 선배 B 씨는 5년 넘게 함께한 팀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친구 이상의 사이가 되었다. 그런 사람이 억지로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나만이 맺을 수 있는 형태로 피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맴돌았다.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릴 때는 쾌활함을 모방해 보기도 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회사 생활에 치이다 보니 문득, 적당한 거리감의 편안함이 사무쳤다. 서로 결이 맞는 이들끼리의 비슷한 온도감을 자연스레 느끼게 되었다. 점심 식사 후, 슬쩍 갖는 혼자만의 시간은 회사에서 누리는 작은 호사이다. 이따금 동기들과 식사를 함께 하면 된다.
억지로 다가가지 않아도, 서로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거리는 존재한다. 어쩌면 관계는 가까움이 아니라, 서로가 숨을 쉴 수 있는 거리를 알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과 친해질 수는 없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