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는(cherish) 것은 save하는 것과 딴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중하게 여겨 보살피’는 것들의 대상은 주로 사람과, 손이 계속 가는 물건이다. 그런 게 뭐가 있나 되짚어 보니, 일기, 드라마와 영화 시청 기록, 그리고 '보라'라는 필명과 그 아래 쌓아온 브런치 매거진·뉴스레터·기고 같은 것들이 수두룩하다. 효율만 따지면 진작 정리됐을 것들을 굳이 계속 보살피고 있다.
사전 뜻으로 보면 1번은 덜 쓰는 것이고 2번은 더 쓰는 것인데, 이 둘이 충돌하지 않는 이유는 왤까? 아무래도 1번에서 아낀 시간을 2번 대상에 몰아주는 구조인가 싶다. 그만큼 1번은 해야 할 일이고, 2번은 하고 싶은 일인 것이다. 한편, 이렇게까지 아껴서 뭔가 남아야 하는데 남는 걸 보면 내가 의도한 것-시간과 주의력-이 전혀 아니다. 일의 성과(논문, 기록, 콘텐츠 등)이 남는데, '그것에 내 시간과 주의력이 100% 투자되었는가?' 하면 되레 '아 그때 100%씩 투자해서 200, 300%를 해낸 게 아니라 내 100%를 여러 개로 쪼개 썼구나. 그러니 여기에 20-30%밖에 못 썼지! 으휴!' 라는 걸 깨닫게 된다.
웃픈 건 이 구조에 대해 너구리와 같은 이들의 배려가 크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로부터 파생된 1번이나 2번의 결과보다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준다. 빡빡한 캘린더 사이에 겨우 난 시간에 나를 만나주고, 어느 날 갑자기 기프티콘을 보내며 끼니를 챙겨준다. 내 100%의 아낌을 열심히 쪼갤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아낌 덕분이다!
고백하자면 이런저런 깨달음을 메모로 기록해두다가 클로드를 켰다. “이 사전 정의를 보고, 1번 뜻과 2번 뜻 각각에 대해 나를 대입해서 '내가 아끼는 것'을 한 문단으로 작성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이번 글의 좋은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문장은 정말 맵디 매웠다.
“2번의 목록에 자기 자신을 한 줄 넣는 것이
지금 가장 비어 있는 자리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