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는 물리학자다. 코끼리의 몸집과 서울의 인구를 같은 자로 재보기로 한다. 그래서 나온 숫자가 이렇다. 인구가 두 배인 도시에는 주유소도 두 배쯤 필요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1.8개 정도면 충분하다. 도로도, 전선도, 상수도도 똑같이 덜 든다. 여기까지는 익히 아는 '규모의 경제'다. 반전은 그다음이다. 임금, 특허, 창업, 식당 수처럼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두 배가 아니라 2.2배로 늘어난다. 도시가 커지면 시설은 절약되는데, 사람은 1인당 오히려 더 많이 만들어낸다. 인구가 두 배가 될 때마다 한 사람이 내는 몫이 15%씩 붙는 셈이다. 도시가 주는 건 인프라가 아니라 마주침이었던 것이다.
그럼 회사는 어떨까. 웨스트가 같은 자를 기업에 대봤더니, 기업은 도시가 아니라 생물을 닮아 있었다. 커질수록 효율은 좋아지지만, 사람이 만들어내는 몫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 관리가 혁신을 조금씩 밀어낸다. 그래서 도시는 좀처럼 죽지 않는 반면(폭격을 맞은 도시도 결국 되살아난다) 기업은 놀라울 만큼 규칙적으로 죽는다. 상장기업의 절반가량은 10년 안팎이면 사라진다고 한다. 회사가 커질수록 답답해지는 게 예민함 탓이 아니라 구조였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문장은 이렇게도 읽힌다. 성장의 상승분을 회사 하나에 통째로 걸어두는 건, 생각보다 나쁜 베팅일지도 모른다고.
솔직히 처음엔 두께를 보고 미뤘다. 이른바 벽돌책이니까. 그런데 웨스트는 수식 대신 이야기로 민다. 고질라는 왜 실제로는 서 있을 수조차 없는지, 개미만 한 포유류는 왜 없는지, 심장은 왜 평생 비슷한 횟수만 뛰는지 같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도시 이야기에 도착해 있다. 그리고 한 권이 다음 책을 불렀다. 여기서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다들 과학이 기술에 선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책)로, 이어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다들 우리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책)로 넘어갔다. 벽돌책은 한 권을 완독하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렌즈를 통째로 갈아 끼우는 일에 가깝다. 한 번 갈아 끼우면 다음 책이 훨씬 빨리 읽힌다.
'생각을 뒤집은 책'이 꼭 새로운 정보를 주는 책은 아닌 듯하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다른 순서로 다시 세워주는 책이다. 『스케일』 이후로 규모를 좋다/나쁘다로 나누지 않게 됐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지금 커지고 있는 게 시설인가, 사람인가. 조직에서든 도시에서든 커리어에서든, 이 질문 하나가 꽤 많은 것을 정리해준다. 하반기에 벽돌책 한 권을 고를 생각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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