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메이트인 남동생은 INFP다. 특히, 내가 극단의 TJ라면 그는 반대 극에 있는 FP다. 어릴 때는 이 성격차로 인해 그가 많이 울고 답답했다. 2살 많은 나는 여성이고, 2살 어린 동생은 남성이라, 발달 과정상 자연스레 말이 느렸다. (아마 동갑이었어도 여성인 내가 말이 더 빨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그가 생각의 돌다리를 n번 두드리는 동안 이미 내 말빨로 그가 두드리던 돌다리에 자꾸 새로운 돌다리가 생기는 형국이었다. 말로 나를 이길 수 없었던 그는, 내 등을 깨물었고 포니테일을 잡아당겼다. 말로 안 되니 얍삽하게 힘을 쓰고 도망가는 전략이었다.
누나를 치고 도망가던 유치원생 꼬마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맘때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 감정에 따른 행동은 현격히 달랐다. 나는 상대와 친해지기 위한 기회를 노리고 설계했다. 그는 내 조언을 듣고는 그조차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걱정했다. 그리고는 아무도 모르게 학교에 일찍 가서 그 친구 책상 서랍에 사탕을 넣어두었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그가 학교 생활은 잘하는지가 정말 걱정됐다. (다행스럽게도 남자인 친구들과는 북적북적 잘 지낸다.)
우리가 중고등학생인 시절에는 서로가 더 상극이었다. 나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고꾸라져서 절망하고 어떻게든 일어나 여럿의 걱정을 샀다. 한편 그는 ‘인생은 내 마음대로(=계획대로) 흘러갈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어떤 목표나 결승점 없이 매 순간 열심히 살았다. 그로 인해 또 여럿의 걱정을 샀다.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고등학교 졸업하고 뭐 할 거냐” 등 수많은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가 그에게 쏟아졌다. 그때 우리는 친했지만, 서로의 속털이를 하기엔 서로를 향해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라고 되뇌였다.
지금 우리는 둘 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가고, 회사에 다닌다. 20대 중반 어느 날, 내게는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인간관계 이슈로 괴로웠던 날들이 있었다. 나를 보던 그는 내 머릿속에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를 던졌다. “어떤 방식이든 그냥 누나가 하고 싶은 걸 하려는 거네. 상대보다는.” 그렇다. 카톡을 보낼지 말지,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지 다른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만나야 할지 등 수많은 내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나’였다. 내 이야기를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본 그는 내 이야기가 아무리 객관적이어도 시점이 ‘나’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다는 이야기, 때로는 계획보다는 흘러가는대로 두는 것이 섭리이라는 이야기,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고꾸라지고 상처 받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맞았기 때문이다.
7세 누나는 5세 동생 입을 닫히게 했고, 25세 동생은 27세 누나의 입을 다물게 했다. 지금 나는 고민이 중대할수록 빠르게 동생에게 의견을 구한다. 그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관점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1인칭이 아닌 3인칭 작가 혹은 2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풀어지기 때문에, 객관적이고픈 내 욕망을 저격한다. 한편, 나와 상극에 있는 그의 주장에 내가 동의가 되는 점에서도 안심이 된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어도 이 정도까지는 서로 납득할 수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 셈이니까 말이다.
얼마 전, 내 생일날 가족 저녁식사에서 그가 말했다. “고등학생 때 누나는 진짜 빡셌어. 근데 지금은 많이 사람 됐지. 물론 나도 여럿 물어보고 도움을 얻고 하지만.” - 이 말은, 이제와 말하지만, TJ인 누나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 아, 우리는 진짜 끈끈한 한 팀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