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10대, 20대에 친구들과 많은 것을 함께하고 싶었다. 개인의 사정으로, 시험 준비 등으로, ‘미래’라는 이름으로 늘 다음을 외치며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뒤로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서운함, 질투를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음이 극에 달해 갈 때쯤 생각보다 큰일이 나에게 연달아 일어나며 마음이 한없이 무너지던 순간들이 생겨났다. 그때 사소한 일상의 말과 단어들과 함께 “밥 먹었어?”, “커피 먹었어?”, “뭐 해?”와 같은 말들로 위로할 뿐이었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오히려 “너 괜찮아. 힘내.”라는 말보다 상투적이고 평범한 말들에 큰 위로를 받았다. 굳이 상처를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을 이해하며 다정한 말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 친구들이 그랬다. 그때 “너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너 괜찮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고 당장 묻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묻지 않고 좀 더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했던 친구들에게 감사히 생각한다. 그 이후는 서로의 사정으로 자주 보지 못해도 크게 서운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사정이 있겠지.’하고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아마 그렇게 되기까지는 함께 해온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을 같이 느끼고 공유하고, 특히 서로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우린 서로를 팀이라 칭하지 않지만 이미 팀이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누구 할 것 없이 축하 자리를 마련하고 가까운 지인에게도 알리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길 원한다.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직접 위로해주거나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며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와 다정한 말들을 건넨다. 그리고 다정한 말과 함께 손편지를 준비한다. 설령 위로의 말이 없더라도 편지는 건넨다.
차마 얼굴보고 주기 민망할 때면 우편을 보내거나 커피 한 잔을 사서 그것과 같이 친구 집 문고리 걸어두고 사진만 덩그러니 찍어 보낸다. 이런 행동들을 보며 참 다정스럽고 늘 서로를 걱정하는데 말들은 어찌나 직설적이고 강한지 알아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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