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주제는 [한 팀이 된다는 것]이에요. 최근 북남미 월드컵 등 크고 작은 사회 이슈들에서 ‘팀이라는 건 뭘까? 팀이라면 어디까지 동기화되어야 하는 걸까? 동기화가 필요하기는 할까?’ 이런저런 고민이 연이어졌어요. 생각할수록 답이 또렷해지기는 커녕 뒤죽박죽 꼬이기만 하더라고요. 그래서 Cuz 멤버들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의 답을 너구리가 보내요! 님의 답도 한 번 고민해보시면, 지난 2026년 상반기 마무리와 하반기 시작이 더 단단해질 거예요!
from 보더콜리
날 찾지 마세요
- 너구리
이직하고 적응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남들은 짧으면 한 달, 길면 6개월이면 적응한다. 자잘한 실수를 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날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적응했다고 이야기한다.
변명하자면 이전에 일하던 방식을 180도 바꿔야 했다. 펜을 들고 다니며 종이 차트 한편에 중요한 메모만 남기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속기사처럼 원장님과 환자의 대화를 컴퓨터로 기록한다. 원장님마다 진료 스타일도 다르다. 예를 들어, 기구를 옆에 올려놓기만 해도 알아서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에 기구를 꼭 쥐여줘야 하는 사람이 있다. 일일이 챙겨주다 보면 내 손이 4개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제미나이가 만든 이미지
이직하고 4개월 차에 일일 아르바이트를 온 치과위생사 선생님이 병원 쌤끼리의 팀워크가 좋다며 칭찬했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지기보다 좋은 팀워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긴장감에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그때 평소에 안 하던 차팅 실수로 하루에 3번이나 불려 가서 혼났다.
내가 할 일만 챙기면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다. 명확하게 각자의 업무가 정해져 있지 않고 모두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옆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일이 언제 끝나는지, 필요한 물건은 없는지 모두 눈치로 챙겨야 한다. 점차 적응하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으로 병원 쌤끼리 서로 필요한 것을 챙겨준다. (고도로 발달한 팀워크는 사랑과 구분할 수 없다.)
이 병원에 온 지 1년 8개월이 넘은 지금은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간혹 톱니 하나가 닳아 어긋날 때도 있지만 대체로 평온하다. 내일도 아무도 날 찾지 않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