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덕질을 하면 일을 잘할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도 스탠딩석이라면 공연 시간과 대기 시간을 포함해서 6시간은 서 있는다. 주변에서 20대 후반에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하냐는 핀잔을 준다.
물가를 적극 반영한 공식 굿즈들은 월급쟁이의 지갑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수시로 체력과 멘털, 통장 잔액을 관리하지 않으면 좋아할 수 없다. 덕질을 통해 일을 하기 위한 최고의 조건들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무언가에 몰두해도 출근하면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런 날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학습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일깨운다. 현실이라는 벽이 높고 험난해서 시도조차 하기 힘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본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벽 너머에 있는 세계를 볼 수 있다.
갓 입사한 1년 차 때는 5년 차 직장 선배가 대단해 보였다. 혼자 어려운 업무도 척척 해내며 후배를 아낄 줄 아는 넓은 아량에 감동했다. 막상 5년 차가 돼 보니 1년 차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다른 사람이 척척 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등바등 해내고 있었고 후배가 업계를 떠나지 않게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지금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찔하다. 그런 사람에게 눈앞에 우뚝 가로놓인 높디높은 벽 그 건너편의 광경을 볼 수 있는 건 끈질기게 버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러주고 싶다.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애정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다.
취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 애정하는 일을 찾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판타지 장르가 인기 있는 이유도 이와 동일하다. 잠시 현실을 잊고 무한히 빠져들 세계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지금부터라도 체력, 멘털, 지갑을 사수해서 그 세계를 마음껏 누리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