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일과 대학원을 병행하기 시작하면서 당당한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새로운 백팩을 찾았어요. 노트북과 간단한 소지품만 들어갈 만한 크기의 백팩, 한편 너무 기능만 따질 수 없으니 겉모습이 예쁜! 그런 가방을 찾고 찾은 끝에 발견한 거라 애정이 남달랐어요. 그래서 그 백팩을 지금도 월화수목금 매일 메고 다녀요. 그 가방을 본 제 동료가 "쌤 가방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초등학생 가방 같은데요?ㅋㅋ" 라고 하더라고요. 평소라면 '어? 이 가방이 이상한가? 커리어우먼이 아니고 초등학생이라고?'라는 의심과 함께 의기소침해졌을 테지만, 오늘은 하하하 웃어 넘겼어요. 어떤 말을 들어도 내 백팩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거든요. 님에게도 누가 뭐래도 특별한 애정이 가는 물건이 있나요? 오늘카피바라의 잘쓴템과 쓸없템에서 그 반전을 꼭 확인해 보세요!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를 좇아
- 카피바라
장바구니에 넣어놓은 물건은 두세 달을 고민하다가 결국 삭제 버튼을 누른다. 대신 1,000원짜리 자잘한 물건 열 개를 산다. 썩 구두쇠는 못되지만, 통장 잔고 ‘0원’은 그래도 ‘N원을 빼고 남은 돈’인 편이다. 쇼핑 보다는 여행에 돈을 쓴다. 여행을 위한 쇼핑은? 여행지에서 사오기 위해 최대한 참아본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썩 후회되는 소비는 없다. 잘 까먹거나, 다 잘 쓰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어릴 때 특이한 디자인 소품을 모아놓은 책에서 처음 ‘얼리어답터’라는 말을 배웠다. 그때부터 얼리어답터가 되어 보는 것이 나름의 꿈이었지만, 지금은 취향의 사소한 물건들로 만족하기로 했다.
디지털 시대, 아니 AI 시대에 연필이라니. 그럼에도 올해 내가 가장 잘 샀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블랙윙 연필이다. 개당 약 4천원에 ‘연필계의 에르메스’가 별명인 이 친구들은 알음알음 유명세를 타 내게도 들렸다. 몇년 전, 이름이 각인된 연필 두자루를 선물 받은 걸 계기로 샤프 대신 연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각거리면서도 부드러운 필기감에 유독 글씨체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연필을 돌려가며 깎는 재미, 심지어 지우개도 달려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후회하는 물건은 ‘태블릿 pc용 360도 회전 블루투스 키보드 케이스’ 이다. 가벼워진 가방을 상상하며 카페에서의 작업을 노리고 구매했지만, 이미 기계식 키보드와 맥북에 적응된 나에겐 그저 무게만 무거운 케이스일 뿐이었다. 이거 들고 다니느니 그냥 노트북을 들고다니지.. 비싸게 주고 샀는데 무용지물이다.
의도치 않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비가 뚜렷하다. 회사 보안 때문에 개인용 핸드폰과 노트북 외의 기기는 들고 다닐 수 없어서일까. 작은 공책과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사소한 생각들을 끄적이다 보면서 점차 애정이 생겼나 보다.
📽️ 소비 MBTI: ERFQ
이번 [잘쓴템쓸없템] 시리즈를 작성하기 전 Cuz 멤버들은 소비 MBTI 검사를 했어요. 카피바라는 ERFQ 유형이었어요. '차분하고 엄격한 자기관리 끝판왕'으로, 돈에 대해 엄격한 관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요. 혹시 나의 소비 유형이 어떨지 궁금하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서 검사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