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상 “연애”는 인생의 주된 대화 주제일까? 우리는 일상 속 “보통의 삶”을 떠올릴 때, 자연스레 그 안에 누군가와의 관계를 생각한다. 아마도 연애는, 인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아주 오랜 수단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통계적으로는 연애, 결혼, 출산율이 점점 낮아진다는데, 봄가을만 되면 청접장 모임이 끊임없다. 주변에서 다들 하나 둘씩 결혼을 하니 “나도 슬슬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꼭 있다. 결혼을 차치하더라도 스무 살, 그리고 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어떤 누군가를 보며 설레하고 고백하고 사귀며 일상의 큰 부분을 연애로 채우며 살아간다. 동물도 짝짓기를 하고, 아주 먼 과거부터 인간은 그렇게 세대를 이어왔다.
물론 과거의 연애 행태와 현재는 전제 조건부터 큰 차이가 존재한다. 몇십 년 전만 해도 결혼은, 특히 여성에게는 삶의 수단이었다. 경제활동의 기회가 제한된 사회에서 결혼은 생존의 방식이었고, 사랑보다는 생활의 연속이 더 중요한 시대였다. 어찌 보면 그 시대에는 연애보다는 결혼이 삶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반면, 현재에선 삶의 수단으로서의 연애는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지금의 연애는 예전처럼 생존의 이유가 되지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관계의 이유가 된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위로받고, 세상과 부딪히는 감정을 함께 감당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다’라는
가장 오래된 본능으로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항상 연애와 사랑을 삶의 필수 불가결인 요소로 생각해 온 적이 없다. 그저 행운처럼 마음이 가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것이고, 그게 아니어도 내 삶은 다른 것들로 충분히 채워져있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뭔가 조금 더 근본적인 것에서 온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사랑의 존재 같은.
연애와 사랑은 떼어 낼래야 떼어낼 수 없지만, 사랑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넓고 크다. 인간에 대한 사랑,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 것, 세계를 사랑하고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하나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 참 재밌게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문득 떠올랐다. 연애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사랑은 나를 잃지 않은 채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
그 오랜 마음을 “연애”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