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계절을 떠올리면 가까운 과거보다 먼 어린 시절이 먼저 기억난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하면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던데 그런가 보다. 조금은 웃프다. 여름이면 시골의 할머니 집에서 보냈던 여름이 떠오른다. 밭에 가서 작은 농작물들을 따오고, 같이 그 농작물을 다듬고, 정리한 후에는 옥수수와 수박을 먹었다.
아직도 할머니가 쩌준 옥수수를 뛰어넘는 걸 먹지 못했다. 옥수수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면 “너거 할머니가 신화당 많이 넣어서 달아서 그렇다.”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냥 “그치, 할머니 삶아준 거 맛있지!” 하면 될텐데, 꼭 그렇게 팩트를 알려 주셔야 하나 생각했다.
삶아주시는 옥수수 말고도 근처 계곡에서 친척 언니, 오빠, 동생들과 실컷 놀다오면 시원한 수박을 잘라 주셨다. 대청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고 씨를 따로 골라 내서 누가 더 멀리 뱉나 같은 유치한 내기를 했다. 어른들 몰래 하다 걸리면 등짝 맞고 혼나면서도 다시 할 타이밍을 재며 즐겁게 웃었다.
그렇게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저녁 전 아이스크림을 사먹기 위해 슈퍼를 가곤 했다. 진짜 ’슈퍼마켙‘이라고 써 있는 가게를 향해 꼬맹이들끼리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걸었다. 그 길에는 옥수수도, 고구마도, 고추 밭도 있었다. 그리고 벼도 자라고 있다. 슈퍼에 거의 다다르면 커다란 보호수 나무가 있었다. 항상 그곳을 지날 때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나무 밑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기다리고 몸의 열기가 식을 때쯤 나무의 몸통 한 바퀴를 누가 더 빨리 뛰나 다같이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15분도 안 될 거리를 30분이 넘게 걸려 간 슈퍼에 손에 쮸쮸바 하나, 과자 하나를 손에 들고 갔다. 간식거리를 사들고 다시 할머니집으로 가면 밥 짓는 냄새와 고기 굽는 냄새, 그 소리 사이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이모부들의 웃는 소리와 대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그 소리와 냄새 속으로 들어가 맛있는 밥을 먹고, 밤이 되면 모기향을 피우고 다시 마루에 누워 매미 소리를 들으며 별을 보곤 하루 보냈다.
이렇게 행복한 추억이 있기 때문에 여름이면 어린 시절 할머니 집 풍경이 생각이 나고, 옥수수 냄새에 할머니 생각이 나고, 할머니 모습에서 정겨운 말과 다정한 얼굴이 떠오른다. 이 정겨운 추억들이 있는 나만의 장소 덕분에 지친 일상을 보내더라도 ‘다시 괜찮아질 거야.’라는 마음이 든다.
엄마 집으로,
때론 지금의 계절을 만끽하기 위해
나의 숲이 있는 할머니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