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제일 먼저 생각나는게 너네들이라 연락해" 16년지기 친구가 카톡으로 부고를 보냈어요. 밤 12시 54분에요.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카톡을 보고 그 자리에서 굳었어요. 정신을 부여잡고 팀장님께 오전 출근하되 오후 반차를 쓸 수 있는지 연락을 넣었어요. 그리고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 후에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근길에 올랐어요. 그날 가장 위험한 운전을 했던 것 같아요. 하늘은 맑기만 한데, 제 눈앞은 떨어지는 물로 흐릿했어요. 마치 폭우가 내리는 것처럼요.
장례식장에서 본 친구는 이상하리만큼 의젓했어요. 그리고 이번 글에서 그녀에게 최애는 어떤 의미인지, 최애를 잃는 시간을 어떻게 겪어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너구리의 '최애를 잃다'를 전해드립니다. 커리어걸즈 레터를 읽고 떠오르는 말들이 있다면, triple.sidepjt@gmail.com나 인스타그램 careergirls.letters DM으로 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항상 자유롭게 열려있답니다.
최애를 잃다
- 너구리
2017년 12월 18일 최애를 잃었다.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 급작스러운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급하게 휴대전화를 꺼냈다. 관련 뉴스를 검색하느라 그날 밤은 잠을 못 잤다. 고등학생 시절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들으며 하루를 위로받고 잠에 들었다. 위로는 다 받았으면서 정작 그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 이번에 컴백한 샤이니 앨범 Poet Artist에는 종현의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콘서트장에서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오랜만에 5명의 멤버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그렇게 그는 마음속 영원한 최애로 자리잡았다.
또 다른 최애는 서서히 잃어져 갔다. 유치원생 때부터 아빠의 손을 잡고 항상 대답했다.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간단히 말하자면 주변에 비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사랑하고 헌신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녀들에게 화를 낸 적도 없다. 그런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사람의 생명의 불꽃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19개월의 항암은 결국 암의 승리로 끝났다.
그렇게 또 다시 최애를 잃었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존재의 부재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아빠 생각이 날 때면 휴대전화 앨범을 열어 사진을 본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은 것이 많은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든다. 몇 없는 소중한 동영상을 재생하면 잊고 있던 목소리가 들린다. 늦었지만 ‘아… 사진보다 영상을 더 찍어둘걸.’이라는 못내 아쉬움이 드러난다.
내 옆에 살아 숨 쉬는 존재는 당연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없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보자.
🍂 카피바라의 코멘터리
감히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슬픔도 스며드는 글이었다.
대학시절 마음이 안좋을 때면 낙산공원에 갔더랬다. 종현이 자주 걸었다던 길이라는 말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괜히 그곳에 가면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 줄리엣을 흥얼거리던 나, 기숙사 방에서 혼자 푸른밤을 들으며 잠들던 순간들이 모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빠와의 기억도 문득 떠오른다. 어린 시절 가족끼리 다함께 적벽대전을 보러갔다. '아빠가 웬일로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시지?' 하며 즐거워했다. 훗날 듣기로는 혹시 마지막으로 함께 보는 영화일 수 있겠다 싶으셨다 했다. 항암 치료를 하는 몇 해 동안 나는 혼자 하고 또 혼자 버티는 법을 많이 배웠다.
27살이 훌쩍 넘어버린 나에겐 이제 마음 속 고이 접어둔 기억들이다. 이렇게나마 다시끔 꺼내보며 앞으로의 소중한 것들을 더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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