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생활이 조금 익숙해지자 과외를 시작했다. 과외는 학원 조교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학년별로 과외비가 다른 것은 이해했지만, 지역별로 과외비 차이가 꽤 컸다.
차이보다 더 큰 건, 아이들의 성향과 부모님의 기대였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너무 다양했다. 학원에서 본 아이들은 한 집단처럼 보였는데, 과외에서 만난 아이들은 한 명도 같은 부류가 없었다.
학원 조교일 때는 부모님을 대면할 일이 없어서 몰랐다.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바, 선생님에게 기대하는 바, 그리고 그 둘의 시너지에서 기대하는 바가 다 다양했다는 걸 말이다. 학원 조교를 거친 후 과외 선생님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뻔 했다.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걸 말이다.
대학교 3학년이 되자 한 달 유럽 예산이 모였다. 뭐 이렇게 오래 걸렸나 싶을 수 있다. 3년간 번 수입은 여행 경비이자 생활비였다. 또, 어떤 때는 평소보다 더 큰 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누가 그래, 여행은 여행 당시보다 준비하는 설렘이 더 크다고. 3년 넘게 걸린 준비는 설렘보다는 계속 이어지는 사회의 참맛으로 쓰기도, 맵기도 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하지 않았는가. 어느새 돈이 꽤 모여서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설렘을 가득 품고, 독일, 체코, 스위스, 프랑스를 거쳤다.
예상 외의 호불호를 알아갔다. 터프하지만 그 속에 숨은 단순함이 좋았다. 작아도 아기자기하고 친절한 마음씨가 좋았다. 말도 못하게 광활한 와중에 이 대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방식이 다 달랐다. 생각보다 나는 화려한 건축물과 장식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경험 조각들을 하나둘씩 품고 한국에 돌아왔다.
버킷리스트를 이루면서 나와 세상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가 없었다면 수업 듣기만 해도 힘든 날에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러 갔을까? 학원, 과외 집, 그리고 한국 너머 유럽 나라를 가지 않았다면 세상에 이다지도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고,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을까?
버킷리스트를 해나가는 과정은 꿈을 이루는 시간이자 사람으로서 성숙해지는 시간이었다. 다음 버킷리스트는 미정이다. 또 어떤 미션이 나를 어른으로 사람으로 만들어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