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무지개로 기분 좋게 마무리한 하루>
바람으로 치아를 완전히 건조해서 이를 붙이려는 찰나의 순간에 구강 안에 있던 침이 치아에 닿았다. 치과용 접착제와 침이 만나면 접착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기분 좋게 치과 치료를 마무리했는데 보철물이 쑥 하고 떨어지면 다시 치과에 가야 한다는 두려움과 번거로움, 짜증이 섞여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사랑니를 뽑고 피가 많이 나서 실밥을 한 바늘 꿰매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입으로 숨을 쉬는 환자의 입안에 피가 철철 흘러 피가 한가득 고여있다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며 컴플레인을 이야기할 것이다.
몇 초 사이에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피해가 갈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신경이 곤두서있는 채로 진료에 몰두하기 때문에 퇴근할 때쯤엔 기진맥진하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 만큼 말도 많이 해서 집에 오면 가만히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일도 종종 있다.
한때 대한민국을 장악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뒤를 이을 타자로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가 등장했다. 너무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은 평범한 하루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지쳐있는지 말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지쳐 더 이상 무엇인가를 과시하기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소중해졌다. 아보하의 의미에 공감하며 열심히 운동한 뒤 살짝 멍한 기분으로 계속 살고 싶다.
지구에 인류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항상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구석기 시대에는 사냥하며 유능한 전사임을 인정받았다. 조선시대 땐 과거에 급제해 중앙 관직에 진출하며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현대엔 물질적 풍요를 위해 다양한 직업으로 커리어를 쌓는다. 하지만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효능감이다. 일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 효능감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청소기로 깨끗한 집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청소기를 다 밀고 “성공했다!”라고 외칠 성인이 누가 있겠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업무를 맡고 성공하는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믿음이 성장한다. 하루 빨리 출근하지 않는 삶을 꿈꾸지만 퇴사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나만의 커리어를 쌓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