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는 ‘스승에게서 학문이나 기술의 가르침을 받음.’이라는 뜻이다.
직장 관계에서 동료, 리더, 후배, 선배 여러 사람들이 있어도 내게는 사수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강경 논리/이성파인 내게 인간미를 알려줬고, 회사 안과 밖에서 여러 아이덴디티로 살아가는 기술을 알려주었고, 그 결과 어디 가서 “어떻게 이런 걸 할 줄 알아요?”,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첫 명함을 받고 마냥 웃음이 새어나오던 인턴에게 사수는 그저 높아만 보였다. 본인 일을 눈 깜짝할 새 해내기는 물론이고, 갑자기 대표님이 요청하시는 일도 금세 해내면서, 꼭 인턴인 내 안부를 챙겼다. 진행 중에 혹시 어려운 일이 있는지, 주말 동안 잘 지냈는지, 요즘 고민은 없는지 물어주는 그녀에게 무한히 감사했다.
동시에 열심히 눈치를 봤다. 크고 작은 실수로 의기소침해지지 않으면 하루가 안 끝나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어설픈 인턴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쁜 와중에도 나를 챙기는데 이런 실수나 해대다니. 내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다. 하지만 모든 실수에 그녀는 “이 정도면 별 일 아니네요! 해결할 수 있어요!”라며 나를 다독였다.
인턴 계약이 끝나는 날, 그녀가 나와 동갑이었다는 걸 알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인턴 평가서에 사수이자 동갑내기가 적어준 한 문장도 오래 마음에 남아 굳었다. “힘든 일은 동료와 선배에게 기대요. 잘하고 있는데, 때로 보더콜리가 진 짐이 무거워 보여요.”
작은 회사에서 인턴을 마치고 대기업 정규직이 되었다. 두 번째 사수는 나보다 무려 17살 많았다. 팀장님과 실무자 사이를 연결하는 분이셨다. 이 말인 즉슨, 1) 본인 일 2) 팀장님이 갑자기 요청하시는 일 3) 신입을 돌보는 일 4) 그 외 팀의 전반적인 실무를 다 해내신다는 뜻이다. 몸이 10개쯤 되는 분 같았다.
심지어 이건 그의 회사 일에 불과했다. 그는 다정다감한 남편이자 아빠로도 유명했다. 아침 7시~7시 30분에 출근해서 저녁 7~9시에는 회사 차장님, 그 외 시간과 주말에는 아빠로 사는 그를 보며 내 사수들은 매번 이렇게 완벽한가 싶었다.
그에게는 죄송한 일이 유난히 많았다. 입사 얼마 후, 신입사원 교육 들어갔다. 교육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없었던 탓에, 내가 못한 일을 사수가 다 했다. 시간이 흘러 그 해 겨울, 신입이었던 내게 회사는 차년도 사업계획을 맡겼다. 이 중대한 업무를 잘해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엑셀 시트에 숫자를 잘못 입력하거나 자료를 잘못 마감하는 것처럼 손가락 실수가 말도 안 되게 많았다. 그 다음 해 12월 3주차에 사수님께 가장 먼저 대학원 진학으로 퇴사를 당장 빠르게 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다.
이 모든 죄송한 순간에 그는 화내지 않았다. 어떻게 일을 하면 좋은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심지어 일이 마무리되고 난 다음에 맛있는 저녁 식사를 대접해주며 회포까지 풀어주었다. 퇴사한 지 어연 2년이 넘어가지만 그의 전화는 항상 반갑고 감사하다. "네, 전 당연히 잘 지내요. **님도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