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간 기뻤던 일 시리즈, 그 마지막 편을 너구리가 보내요. 7-8월에 보통 휴가를 간 분들이 많았겠죠? 이번 시리즈 보더콜리는 자기 전 독서, 고슴도치는 퇴근 후 요가, 너구리는 토요일의 데이트를 꼽았어요. 저희의 기쁨은 “최근 한 달”이라는 시간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이나 여행으로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물론 다들 그 사이 여행을 다녀왔지만, 가만히 나의 “기쁨”을 되짚어보면 생각보다 기쁜 마음은 특별한 일에서 겨우 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달까요? 이번 레터를 읽으며, 되레 의식도 못하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당연해서, 내가 기쁜 줄도 모르게 기쁜 삶을 차곡차곡 살아간 한 달을 님도 보내셨길 바라요!
from 보더콜리
멋진 토요일
- 너구리
최근 일태기(일+권태기)로 평일에 눈뜨기 싫다. 왜 평일은 5일, 주말은 2일일까? 평일 3일, 주말 4일이면 딱 균형이 좋은데, 이상하다. 매주 일요일은 조카를 만나기 때문에 그를 만날 수 있는 날은 토요일뿐이다. 심지어 토요일 오전 근무가 있기 때문에 데이트는 점심부터 시작한다. 1년 넘게 안정적인 만남을 이어가면서 데이트 코스는 비교적 단순해졌다. 밥 먹고 카페 가고 산책하기. 새로운 데이트 장소를 찾기보단 자체적인 콘텐츠를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이것을 ‘AI 괴롭히기’라고 부른다.
AI로 재미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우리 커플은 포켓몬에 진심이다. 만날 때마다 포켓몬마다 서사, 능력치, 귀여움을 얘기한다. 각자 최애 포켓몬인 메타몽과 리자몽이 만나면 누가 이길지 토론한다. 그러다 문득 귀여운 아이들을 합치면 어떤 포켓몬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AI를 활용해 토게피와 피카츄를 합친 “토게피카츄”를 만들었다. 토게피카츄의 분노, 슬픔, 진화 버전을 만들며 카페가 떠나가도록 웃었다.
소개팅 첫 만남 때도 메이플 스토리 게임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취미를 묻는 형식적인 질문에 “어릴 때 메이플 스토리 하다 게임을 좋아하게 됐다.”라는 대답이 발단이었다. 메이플 스토리, 포켓몬을 넘어 심슨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도 닮았다. 남들이 봤을 땐 유치한 주제로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취향이 닮았다. 오죽하면 처음엔 각자 형제가 있지만 서로 잃어버린 남매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소름 끼칠 정도로 생각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존재하는 게 신기했다.
회사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제된 이야기를 해서 재미없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취향이 다르다. 부가 설명을 안 하고, 눈빛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아는 사이. 비슷한 취향 덕분에 같이 노는 게 재미있는 사이를 만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오늘도 토요일만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