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재미지고 치열하게 산 우리들의 설 연휴 요약. 💟 2월 19일의 질문
2026년 설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벌써 출근이라니. 괜시리 '아,, 목요일이랑 금요일도 쉬지!'하는 아쉬움이 몰려오는 목요일이었어요. 설날 연휴가 너무 달콤했던 나머지 목요일이 유난히 벅찼지만! 그만큼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두둑히 비축했으니(몸에는 사실 비축하지 않아도 됐는데 말이에요!ㅋㅋ) 남은 금요일쯤은 가볍게 이겨내길 바라요! 우린 해낼 수 있다! 버텨! 해내! 이겨내!!!
from 보더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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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에 있었던 일?
보더콜리🐕는 전자책 작업에 몰두했다. 두 가지 주제의 글감을 3일 동안 다 쓸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번 연휴가 짧았다. 제대로 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설날이 되레 평소보다 더 바삐 지나갔지만, 되게 기뻤다. 그토록 아껴둔 글을 세상에 공개할 수 있게 됐으니까! (곧 공개 예정! 개봉박두!)
너구리🦝는 토요일까지 출근하고 일요일엔 엄마랑 영종도에 있는 해수 찜질을 하고 데이트를 했다. 설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월요일부터 조카들과 함께 할머니네 댁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5살 조카가 개인기로 앞구르기를 하면 세뱃돈을 줘야 했다.
고슴도치🦔는 이번 설에는 쉼과 미뤄뒀던 2025년의 마무리, 2026년의 새로운 시작을 다시 준비하는 시간을 계획했다. 쉼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별다른 약속도 하지 않는 거였다. 이건 너무 쉬웠다. 그냥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거였다. 충분히 하나는 잘 해내고 있다. ㅋㅋㅋ 다른 하나는 하루에 작은 미션만 하나씩 주고 적어나가는 중이다. 예를 들면 25년에 잘한 일 3가지 쓰고, 그 밑에 스스로 피드백해 보기, 일기 말고 계획 쓰기 등 작은 할 일들을 부여하고 있다. 쉬면서 완전히 일상을 놓치지 않고 작은 미션을 해나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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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최애 메뉴!
고슴도치🦔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회’와 문어숙회인 거 같다. 본가도 할머니 집도 바닷가 근처지만 어릴 때는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회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꽃게는 먹기에 번거롭고, 문어, 해삼, 멍게, 생산들 그 귀한 것들은 맛을 몰랐다. 근데 의지만 상관없이 먹기도 하고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새 명절이 오면 회와 문어숙회가 생각난다. 식당에서 먹을 수 없는 그날 잡은 회를 떠 와서 먹고, 회를 뜨고 남은 부위는 매운탕을 해 먹고, 문어와 가리비, 꽃게는 부족함 없이 먹고 나면 명절 지나갔다. 그래서 어느새 회와 다른 해산물의 맛을 알게 되고, 그 두 음식은 추억을 떠올리는 행복한 매개체가 되었다.
너구리🦝는 명절마다 할머니표 식혜와 양념게장, 동그랑땡을 먹는 게 가족들의 행복이다. 요리 솜씨가 좋은 할머니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먹다 보면 명절 후에 3킬로가 쪄 있다. 미리 운동을 해놔야 안전한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다.
보더콜리🐕의 친가는 강원도, 외가는 경상도 분들이다. 그 덕분에 친가에 가면 녹두김치전을, 외가에 가면 배추전을 먹는 행운을 누렸다. 녹두김치전이라고 하면 걸쭉하고 노란 반죽 위에 김치 세 줄을 죽죽 찢어서 얹어 구운 전이다. 시장에서 팔기도 하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전은 유달리 뻑뻑하면서도 바삭한 전이라 좋아한다. 오죽하면 어릴 때는 김치가 없는 꼬다리 부분만 골라 먹었다. 어른이 되고 난 지금은 그 전에 청주나 막걸리를 곁들이기를 정말 좋아한다. 바삭 한 입에 시원한 꿀꺽 한 모금이면 설날의 향과 맛이다. 친가에서 녹두김치전을 먹은 다음 날, 외가로 향한다. 네모난 상 가득히 차려진 수많은 음식 중 가장 허여멀건한 배추전에 가장 먼저 손이 간다. 어제 먹은 전과 달리 슴슴하고 부드럽다. 어릴 때도 지금도 이 맛은 그대로 좋다. 계속 씹다보면 베어나오는 달큰함은 왜 질리지가 않는지. 이 맛은 벌써 못 먹은지 오래다. 그 맛은 그리운 설날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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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나는 세뱃돈?
너구리🦝는 중학생 때 세뱃돈을 37만 원 받았다. 당시 최고 금액을 갱신한 세뱃돈에 흥분해서 안양일번가 지하상가에서 그동안 입고 싶던 옷을 와장창 샀다. 호기롭게 구매했지만, 평소 시도조차 못 한 예쁜 옷은 손이 잘 안 가서 결국 환불도 못 하고 헌 옷 수거함에 들어갔다.
보더콜리🐕는 오래 고민해도 ‘내가 받은 세뱃돈’ 중 기억나는 건 없었다. 생각할수록 ‘동생이 받은 세뱃돈’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내가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때였다. 여느 때와 없이 세배를 했고, 세뱃돈을 받았다. 한 어른은 나와 동생에게 3만 원씩 주고 나서, 내게 2만 원을 더 주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2살 누나라, 2만 원을 더 준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전혀 몰랐다. 이 차이가 속상할 수 있다는 것을. 엄마와 아빠는 그 사실을 알고 우리한테 말했다. 앞으로 우린 세뱃돈 차이가 없다고. 엄마와 아빠도 우리에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같은 세뱃돈을 주었다. 어린 나는 ‘서운함’을 몰랐지만, 어른이 된 나는 ‘나이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대우를, 특히 부당한 대우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고슴도치🦔도 마찬가지다.어릴 때 받았던 세뱃돈은 별로 기억이 없다. 기억나는 거는 동생이 “왜 누나라고 누나가 더 많이 받아?” 이해 할 수 없다는 그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도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에피소드보다 최근에 받았던 세뱃돈이 기억이 난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하고 시간이 지나면 용돈을 받는거 보다 줘야할이 더 많아지는데 몇 년 전 명절에 외삼촌이 오랜만에 봤다고 돈 뭉치를 꺼내면서 나이꽉찬 돈버는 조카들에게 큰 돈을 세뱃돈으로 주셨다. 몇 장인지 세어보지도 않으시고 잡히는대로 주셨다. 다들 생각지도 못한 용돈이라 의아해하면서 받았다. 그러면서 얼굴에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 함박웃음을 지으며 받았다. 용돈을 받고 뒤돌아서 세보는데 40만 원 가까이 되었던거 같다. 좋긴 했지만 너무 놀랐다. 주변에 계신 어른들도“ 너거 땡잡았네. 너가 줘야 하는데 받아가네. 시골 잘 따라왔제. ” 하시며 웃으셨다. 잊을 수 없는 세뱃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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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설날 에피소드!
보더콜리🐕가 어릴 적, 설날은 추석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특히 친가는 더 북적거렸다. 아빠는 8남매 중 막내였다. 아빠의 누나와 형, 그들의 자녀와 손자녀가 온집을 채웠다. 거실에는 이제 막 도착해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매 시간 있었다. 안방에서는 대화를 하거나 화투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엌에서는 엄마와 큰엄마들이 요리를 했다. 태어날 때부터 계속 그 장면 속에 있었던 터라 그 장면이 이색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가득한 것도, 누군가는 먹고 누군가는 일하고 누군가는 놀기만 한다는 것도. 참 신기하게도 십 수 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고요한 명절이다. 딱 나, 동생, 엄마, 아빠만 모이는 명절이다. 우린 다같이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먹고 싶은 걸 챙긴다. 매번 같았던 설날이라 특정 장면이 기억나지 않는데 또 생각해보니 그 반복되던 설날은 다 참 신기하고, 다시 오지 않을, 오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오길 바라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예전에는 시골에서는 쓰레기를 태워서 버렸다는 걸 알고 있는가? 지금은 불법소각으로 큰일 나지만 너구리🦝가 어릴 때는 먹고 남은 생선 뼈, 휴지 조각 등을 태우는 게 일상이었다. 초등학생 땐 불구경할 때마다 우산, 패딩에 불똥이 튀어 엄마에게 혼구녕이 났다.
고슴도치🦔가 어릴 때 명절 당일이 되면 항상 친가에 갔다가 외가에 간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지 꽤 되었지만 아직 모이고 있다. 모인 김에 다같이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저녁을 먹고 밤 늦게 돌아온다. 예전처럼 자고 오지는 않지만 반나절이상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막상 갈 때는 솔직히 귀찮고 집에서 쉬고 싶지만 또 오랜만에 이모,이모부들, 사촌들을 보면 반갑다. 이런 시간이 아니면 모이기 어려우니까… 그리고 모이면 옛날 일들을 추억하며 웃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그속에서 있던 어린 우리들도 볼수 있어서 좋았다. 어릴 때 명절이면 밤늦게 도착해서 불 꺼진 할아버지 방에서 주무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깨우지 않고 티비를 보기 위해 티비 가까이 다같이 누워서 숨죽여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봤다. 그러다 얼른 자라는 어른들에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다같이 누워서 잠을 잤고, 새소리, 소우는 소리, 닭 우는 소리 등 평소에 들을 수 없는 소리로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에 밥을 먹고, 밥을 먹고 할일이 없어 지겨워진 어린 우리들은 늘 한마음 한뜻으로 읍내로 걸었다. 30-40분을 걸어 간 읍내에 있는 하나 있는 피시방에서 같이 카트라이더를 하고, 허름한 편의점에 가서 라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세뱃돈을 탕진했다. 지금은 운전을 해서 우리끼리 몰래 나와서 커피 한잔하고 들어간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날들을 회상하며 웃곤 한다. 이렇게 보면 설날에 특정한 에피소드가 있기 보다는 설날, 명절 그자체가 특별한 나날이었다. 그런 나날들이 쌓여 추억이 되었다. 그때보다 더 나이든 지금 그때의 즐거움, 특별함, 순수함 등을 회상하며 큰 힘을 준다. 그런 힘을 느낄 때마다 감사하다. 어린시절을 보냈던 곳이 도시만이 아니라 산과 바다에 둘러쌓인 섬에서 시골에서 시간이 있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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